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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송은 어떻게 흘러왔나

SBS 개국으로 인한 개그맨들의 대규모 이적

by 빵주작가 2023. 5. 17.

1960년대 형성된 지상파 TV 3사 시대가 1970년대 첫 번째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1980년대는 2개의 TV만 유지해 오다가 드디어, 1990년대 들어 두 번째 TV 삼국지가 펼쳐졌습니다. SBS-TV가 1991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로 인해 생긴 개그맨들의 대규모 이적 사태를 알아봅니다. 

 

1991년, SBS 개국하다

1991년 겨울 12월 9일, 80년대 내내 KBS와 MBC만 있던 방송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지상파 민영방송인 SBS가 개국한 것입니다. 당시 MBC에서 가장 먼저 만든 아카데미 작가반 1기생으로 다니고 있던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희소식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MBC 아카데미가 생겼다는 건 조금 더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거대한 방송사가 생겼으니 수많은 일자리가 생겼고, 인력에 대한 영입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예능 분야만 살펴보겠습니다. 새로 생긴 방송사 입장에서 인력 영입은 투 트랙으로 해야 합니다. 경력직과 신입직. 1992년 SBS 신입 공채 개그맨 1기로 정선희 김경미 김경식에 특채로 신동엽이 들어옵니다. 1993년에는 2기로 김현동 표인봉 이동우 홍록기 염경환 윤정수가 들어옵니다. 김현동이 누구냐고요? 김구라의 본명입니다. 어찌 보면 경력직들을 영입해 오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즉시 전력감이니까요. SBS가 손을 뻗을 곳은 딱 두 곳, KBS와 MBC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는 두 가지로 유혹을 했을 겁니다. 예우와 출연료 인상. 적지 않은 양 사의 개그맨들이 SBS로 넘어갔습니다.

 

이는 대단한 변화였습니다. 그동안 KBS와 MBC에서 각각 뽑혔던 공채 개그맨들은 말 그대로 전속 개그맨이었습니다.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굳어져갔던 전속 개그맨의 개념은 SBS가 생기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KBS 전속 개그맨 최양락이 갔고, 이봉원이 갔습니다. 심형래 김미화 김학래 이성미 김종국 김지선 하상훈 임미숙 김의환 이경애 최형만이 탈출했습니다. MBC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MBC 공채로 들어와 전속되어 활동하던 개그맨 이홍렬이 갔고, 박미선이 넘어갔습니다. 서세원 정재환 김은우 이옥주 김은태 김창환 최병서 김병조가 갔습니다.

 

언젠가 이홍렬이 자신이 왜 MBC를 떠나 SBS로 갔는지 얘기한 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가 왜 SBS로 갔는지 알아? SBS만 가면 기분이 무지 좋아. 이유가 뭔지 알아? 너도 알지? MBC 들어와서 주차하려면 지하 주차장을 몇 바퀴나 뺑뺑이 돌아야 하는지. 근데 SBS로 차를 몰고 들어가면 뭐가 있는지 알아? 내 이름이 적혀 있는 전용 주차구역이 있거든. 내가 이러니 SBS에 가면 일할 맛이 나지 않겠니?" 물론 단지 주차 환경이 좋아서 이적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만큼 SBS의 개국은 예능판에 지각변동을 가져옵니다. 

 

SBS 개국으로 인한 MBC KBS의 변화

SBS 개국으로 인해 펼쳐진 개그맨들의 대규모 이적이 양 사의 프로그램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KBS의 '봉숭아학당'이라는 코너를 모르는 분 거의 없을 겁니다. <개그콘서트>의 대표 코너 이전에 <한바탕 웃음으로>의 코너였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김형곤이었고 이창훈 오재미 김학래 김지선 등이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SBS라는 학교가 생기면서 학생들이 대거 전학을 간 겁니다. 오죽했으면 선생님도 김형곤에서 서원섭으로 교체되고, 다시 임하룡으로 바뀝니다. 그야말로 대 혼란이었습니다. MBC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세원 정재환 김병조 최병서 같은 잘 나가는 개그맨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안 그대로 80년대부터 내내 KBS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던 MBC의 주말 예능은 더욱 혼란에 빠집니다.

 

하지만, 빈 자리가 나면 새로운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되는 건 인지상정인 걸까요. MBC에서 유력한 개그우먼으로 떠오르던 박미선이 간 자리를 차고 들어온 개그우먼이 있었으니, 이경실입니다. 비주류에서 내공을 키우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이영자, 최성훈이 기를 펴기 시작합니다. KBS도 중진들이 대거 빠져나간 자리를 1991년 실시한 제1회 대학개그제를 통해 들어온 신입 공채 개그맨들이 꽉꽉 채웁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제 막 들어온 신입들을 봉숭아학당에도 마구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싹부터 달랐던 신입들이었습니다.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김용만 남희석 등은 들어오자마자 바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같이 들어온 동기였지만 딱 한 사람, 유재석은 99년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이렇게 1992년 즈음에 대규모 이적 사태가 있었지만 역시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건 진리인가 봅니다. 

 

방송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

이렇게, 1970년대의 제1차 TV삼국지 전쟁은 1990년대 들어 제2차 TV삼국지 전쟁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방송사가 2개만 있는 것보다 3개가 있다는 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일입니다. 더 많은 드라마, 뉴스, 다큐멘터리, 예능 프로그램이 생겼으니 방송인들은 죽을 맛이었겠지만 시청자는 환상의 삼국지였을 겁니다. 다만 안타까운 건, 2011년 12월 1일 개국했던 종편 4사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회에서 다수당에 의해 날치기로 통과된 방송법에 의해 갑자기 나타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1991년 생긴 SBS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방송을 둘러싼 권력 간의 다툼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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