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주말 예능을 지배했던 건 KBS였습니다. <유머 1번지>와 <쇼 비디오자키>가 앞서거뒤 뒤서거니 하며 MBC 주말 예능을 압도했습니다. 하지만 MBC라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했고 시도했습니다. 1990년대가 오면서 마침내, 기지개를 켜고 날아오를 준비를 합니다. 90년대 MBC 예능을 알아봅니다.
무엇을 해도 안 됐던 80년대 MBC 주말 예능
<일밤>이라는 MBC 대표 예능 브랜드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시작은 1981년 3월이었습니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라는 타이틀로 방송을 했습니다. 상대 채널인 KBS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MBC도 꾸준히 시청자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었습니다. 코너 중에 '일요일 밤의 뉴스 대행진'이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1983년 11월 전체적인 포맷을 아예 <일요일 밤의 뉴스 대행진>으로 바꿨습니다. 개그맨 김병조가 앵커 같은 스타일로 진행했습니다. 인기를 더 끄나 싶었는데, 87년 민정당 전당대회 진행을 맡은 김병조가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비슷한 시기에 KBS에서는 공개 코미디 <쇼 비디오자키>가 생겨 고개 좀 들어보려나 했던 MBC 예능을 아예 짓눌러버립니다. MBC는 형식도 뉴스 포맷에서 콩트로 바꾸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KBS의 '쓰리랑 부부', '네로 25시', '도시의 천사들'이 뿜어내는 위세에 눌려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MBC 주말 예능은 힘도 써보지 못한 채 1980년대를 보내며 1990년대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90년대 코미디를 위하여
1990년대 MBC 주말 예능을 얘기하려면 두 사람을 언급해야 합니다. 송창의 피디와 강제상 작가. <일밤>이 매주 <쇼 비디오자키>에 박살나던 시절, 송창의 피디는 어느 날 본부장 방에 들어갔다가 화이트보드에 쓰여 있는 문구를 발견합니다. '90년대 코미디, 90년대 쇼, 90년대 드라마'. 순간 그는 깨닫습니다. "저분은 앞으로 10년을 걱정하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일주일 단위로만 살아왔구나!" 그동안 습관적으로 만들어오던 코미디에 녹아 있던 고정관념들을 살펴보면서 하나씩 깨보기로 다짐합니다. 이런 질문들이었습니다. '코미디는 왜 무조건 코미디언들로만 해야 하지?' '코미디는 왜 콩트만 해야 하지?' '미국에 있는 <투나잇 쇼> 같은 게 왜 우리나라는 없는 거지?' 이러한 고민들에 강제상 작가도 생각을 보탰습니다. '더 이상 콩트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다른 걸 시도해야 합니다.' '그래, 무조건 안 해 본 걸 해야겠지?' '출연자도 새로운 영역에서 영입해 보면 어떨까요?'
이런 고민을 하며 우선 출연자에 변주를 주기로 합니다. 출연자 중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이들은 진행자인데요, MC라고 하면 1명 혹은 2명을 배치하는 게 당연했던 관행을 무너뜨립니다. 4명으로 집단MC 체제를 설정한 후에 개그계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 찾기에 나섭니다. 4명을 모두 다른 업계 사람으로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코미디 DNA를 갖고 있는 이들이 2명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TBC 개그맨 공채로 들어왔는데 방송사가 없어지는 바람에 KBS로 넘어와서 활동하다 MBC로 이적해 와 <일요일 밤의 대행진> '미주알고주알'이라는 코너를 진행했던 말끔하게 생긴 신사 같은 이를 영입했습니다. 주병진입니다. 81년 MBC 라디오 개그콘테스트로 들어왔지만 연기력이 딸리고 강한 부산 사투리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라디오에서 입담을 인정받았던 개그맨도 2호로 배치했습니다. 이경규입니다. 이제는 개그맨이 아닌 분야에서 찾아야 했습니다. 도심 라이브카페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는 대학가요제 출신 여성 가수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송 피디와 강 작가가 그곳을 찾아간 이유는 그 여자가 무지하게 웃긴다는 얘기를 들어서입니다. 소문이 맞았습니다. 3호로 영입했습니다. 데뷔곡이 대박을 낸 남자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를 만난 이유는 비주얼도 말투도 범상치 않아서였습니다. 4호가 되었습니다. 아싸 호랑나비 김흥국입니다.
이렇게 주병진 이경규 노사연 김흥국이라는 새로운 진용이 갖춰졌습니다. 1990년대 일요일 저녁을 책임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막이 올랐습니다.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시는 국민 여러분!
90년대의 예능 프로그램은 각기 다른 성격의 코너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중 1개의 코너라도 화제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새롭게 시작된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주병진 이경규 노사연 김흥국의 합이 잘 맞아 서서히 채널을 고정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배워봅시다'라는 코너가 화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국민 코너의 반열에 오른 '몰래카메라'가 터졌습니다.
몰래카메라는 <일밤>에서 처음 시도한 건 아니었습니다. 80년대 말에 시민들을 상대로 시도한 적 있습니다. 욕만 먹었습니다. 선량한 시민들을 나쁘게 만든다는 이유였습니다. 방향을 바꿨습니다. 스타를 속이자. 잘난 스타가 곤란해하는 상황에 빠지게 하는 건 용인이 되었고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몰래카메라 1호의 희생양은 배우 고현정이었습니다. 웃기는 코너가 나왔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가수 윤상을 사극 촬영한다 속여 곤장을 실제로 때렸고, 가수 유열을 수영장에 불러 샤워장에서 머리 감는 유열의 뒤에서 샴푸를 들이부어 계속 거품이 나와 당황하는 표정을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별 아닌 이별'로 뜬 미남 가수 이범학을 인기 퀴즈 프로 <퀴즈아카데미>의 문제 출제 게스트로 출연하게 하여, 'GNP는 국내총생산입니다. 그렇다면 새발의 피는 무엇일까요?'라는 황당한 문제를 진지한 표정으로 읽게 하여 시청자를 배꼽 빠지게 했습니다. 기세를 몰아 연예인만이 아닌 국회의원 변웅전, 소설가 김홍신, 조경철 박사, 연극배우 윤석화 등 이른바 명사들도 거침없이 속여 '몰래카메라'는 이경규가 하는 오프닝 멘트처럼 '국민이 사랑하는' 대박 코너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은 '몰래카메라'가 주도했고, 중반은 이휘재를 전국구 스타로 만든 'TV 인생극장'이 앞장섰습니다. 후반까지는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양심 냉장고 열풍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MBC <일밤>은 1980년대의 설움을 딛고 1990년대 주말 예능의 최강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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