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TV의 치열한 삼국지가 펼쳐졌던 1960년대와 70년대는 쇼 프로그램이 만개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상황은 엄혹했지만, 국민들에게 흥을 더해준 엔터테이너들인 가수와 뮤지션이 이 시대에 출현했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시절, 어떤 무대에 어떤 분들이 어떤 프로그램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했는지 알아봅니다.
해태극장, OB그랜드쇼가 있었다?
해태, OB, 맥스웰, 유공, 크라운, 롯데, 삼학.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우리에게 친숙한 제품들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기업들의 이름입니다. TV를 시청하면서 이들의 이름을 온전히 볼 수 있다면, 그건 이 기업들이 TV에 광고를 집행했을 때입니다. 그 경우, 방송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 기업이 제작한 광고 영상, 즉 CF가 삽입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1971년 10월 21일 발행된 동아일보의 기사를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지난번 추동계 개편으로 늘어난 예의 타이틀은 <해태극장>, <백화쇼>, <롯데어린이만세>, <피아트쇼>, <일동스포츠>, <OB그랜드쇼>, <해태어린이마을>, <무궁화인기가요>, <유공쇼>, <보배영페스티벌>, <삼학가요쇼> 등 총 15개에 달하고 있는데≫라고 쓰여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프로그램의 제목들입니다. 쇼 프로그램의 메인타이틀에 기업의 이름이 버젓이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를 현재 방영 중인 프로그램에 그대로 대입할 경우 이렇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삼성서진이네>, <기아나혼자산다>, <카카오불후의명곡>. 그렇습니다. 저도 그 시절의 기억은 없고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놀랐습니다. 일본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직접 광고가 1970년대 대한민국의 TV 방송에서도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도 이러한 방송 협찬 시스템이 좋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위의 기사가 나온 이유도 그렇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방송윤리위원회는 66년 9월 수차 논란을 거듭한 후 당시 6개월 이상 장기 계약된 스폰서의 45분 이상 와이드 프로만을 잠정적으로 허용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고, 지난 20일에 열린 10월 정례심의회는 최근 사태를 토의한 후 개편이 끝난 후의 논란이 사실상 어렵다는≫ 논조로 되어 있습니다. 스폰서와 프로그램의 관계, 광고에 관한 방송법 이슈는 여기에서 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다만, 1960년대 지상파 TV 3사가 구축이 되었지만, 라디오와 영화가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던 그 시절의 대중문화 지형에서, TV가 대중들을 사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중 쇼 프로그램이 유독 많았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그 시절의 대세는 예능이었습니다.
미8군 무대의 위력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주한미군을 위한 전용 방송 채널인 AFKN-TV가 전파와 케이블을 이용한 엔터테이닝이었다면, 오프라인 무대를 통한 엔터테인먼트도 있었는데요, 바로 미군무대였습니다. 미 육군의 야전군이자 한국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의 지상군이 미8군이었기에, 흔히 미8군 무대라고 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에 이미 미군기지 주변에서 운영하는 미군 클럽이 264개였다고 합니다. 무대를 즐긴 미군 측에서 한국 연예인들의 공연단에 지불하는 금액은 연간 12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수출규모는 100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미군무대의 시장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군무대에서는 관객이 미군이었으니 당연히 영어로 연주하고 노래해야 했습니다. 스탠더드 팝은 물론이고 컨트리, 스윙재즈에서 로큰롤, 소울을 해야 했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댄스, 코미디, 마술까지 그야말로 매일 밤 그곳에서는 버라이어티 한 쇼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무대에서 내공을 쌓아가게 된 뮤지션과 가수 및 MC들은 대한민국에서 TV와 라디오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면서 무대를 옮기게 되고, 1970년대 TV를 수놓은 수많은 쇼의 주연으로 우뚝 섭니다. 최희준, 현미, 김시스터즈, 한명숙, 서수남, 윤복희, 장미화, 신중현 같은 가수들이 그렇고, 유엔군의 주둔지를 순회하면서 위문공연 무대에 서서 좌중을 사로잡았던 코미디언 곽규석이 그랬습니다. 무엇보다 1964년 TBC-TV가 개국하면서 시작된 <쇼쇼쇼>는 이들이 TV로 진출하여 만들어낸 대한민국 TV쇼의 대표주자였습니다.
TBC-TV의 <쇼쇼쇼>와 수많은 쇼
<쇼쇼쇼>는 춤으로 시작했습니다. 댄서들이 먼저 리듬을 타면, MC 곽규석이 등장하여 함께 춤을 추다가 오프닝 멘트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후라이보이 곽규석입니다!" 흑백 TV의 쇼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주었습니다. 가수의 노래와 코미디언의 원맨쇼, 배우도 노래하고 춤을 췄고 무엇보다 이봉주악단과 TBC 전속무용단이 있었습니다. <쇼쇼쇼>의 매력은 자유분방함에 있었습니다. 1968년 어느 날, 서울대 음대생이 나와 무대 위에 누워가며 영국의 톱 가수 톰 존스의 노래 '딜라일라(Delilah)'를 멋들어지게 부릅니다. 음대생은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되어 있었는데요, 조영남입니다.
이밖에도 쇼는 차고 넘쳤습니다. 가수 패티김이 해외 공연을 계획하면 <패티김 출국 기념 쇼>를 했고, 귀국하면 <패티김 귀국 기념 쇼>를 했습니다. 윤복희가 인기가 있으니까 <여러분의 인기 스타 윤복희 쇼>를 했습니다. 심지어 1969년 MBC에서는 <행운의 고스톱>이라는 퀴즈쇼도 제작했습니다.
이렇게 1960년대와 70년대는 쇼의 시대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엄혹한 시대였지만, 대중들의 한을 풀어줄 돈 들이지 않아도 되는 통로는 TV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방영이 되는 날이면, 동네에서 텔레비전수상기가 있는 집으로 모두 모여 본방사수를 했습니다. 그 시대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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