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국민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올 생활 밀착형 조치들이 쏟아졌습니다. 빡빡머리 중·고등학생들의 두발이 자유화됐습니다. 교복이 자율화됐습니다. 자정을 넘으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통행금지가 해제됐습니다. 프로야구의 프로축구가 출범했습니다. 88년 개최할 올림픽이 대한민국 서울에서 치러질 거라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온통 흑백이었던 TV가, 어느 날 문득, 컬러로 변신했습니다. 그때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컬러 TV,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1980년 12월, 전두환 정부가 국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TV는 흑백이 아닌 컬러로 시청하라는. 그런데, 정말로 선물의 차원으로 기술을 개발하게 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국민에 국한되긴 했지만, 1977년부터 이미 컬러 TV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주한미군 방송이었던 AFKN-TV가 이미 1976년부터 컬러 방송을 해왔습니다. 나도 어린 시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11번 MBC에서 9번 KBS를 거쳐 7번 TBC를 보다가 2번으로 채널을 돌리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 듯 컬러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1960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컬러 TV 방송을 시청하는 부산 시민이 있었습니다. 사실 시나브로 국민들은 이미 컬러방송에 적응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박정희 정부는 그게 그리도 싫었나 봅니다. AFKN-TV가 컬러방송을 개시한다는 계획을 알았을 때 공식적으로 요청했다고 합니다. 컬러로 방송 하는 시기를 늦춰줄 수 없겠냐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황당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합니다. 첫째, 국민들이 위화감을 느낀다. 흑백 TV도 보유하지 않은 가정이 많은데, 그보다 훨씬 고가일 수밖에 없는 컬러 TV가 나오면 없는 사람은 더 비참해진다는 논리였습니다. 둘째, 국민들은 흑백으로 나오는 TV에 만족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AFKN-TV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주한미군의 불만이었습니다.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머나먼 작은 나라로 와서 겪는 문화적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아시아에서 단 세 나라만이 컬러 방송을 하지 않았습니다. 네팔, 라오스 그리고 대한민국이었습니다. 1951년에 컬러 TV 방송을 처음 시작한 미국이야 당연하다 치고, 영국과 홍콩은 67년에 시작했고 필리핀이 66년, 대만도 69년에 했으며 심지어 북한도 74년 4월부터 컬러방송을 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꽤 일어났는데 그중 하나가 스포츠중계였습니다. 당시 인기 최고였던 프로복싱의 국제경기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컬러방송이기에 당연히 양 선수의 구별은 트렁크 색깔로 구분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흑백 TV였기에 아나운서가 설명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컬러 TV 방송, 무조건 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전자업계는 1970년대 중반부터 컬러방송이 구현 가능한 TV 수상기를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1974년 아남전자는 일본 마쓰시타전기와 합작하여 '한국내쇼날'이라는 이름으로 2만 9000여 대의 컬러 TV를 생산했습니다. 1977년부터는 금성사와 삼성전자도 컬러 TV 생산에 합류했습니다. 이유가 뭐였겠습니까. 바로, 수출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들었지만 우리는 쓰지 않고 외국인들이 사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강력하게 항의를 해왔습니다. 1979년에 생산한 컬러 TV 수상기가 110만 대였는데 무려 90%를 미국에 수출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제동이 걸린 겁니다. 연간 30만 대만 수출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배에 선적을 하지 못한 컬러 TV가 창고에 쌓여갔고 관련 업계는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정부로서도 더 이상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국내 시장에 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80년에 하게 된 컬러 TV 개시의 또 다른 측면의 스토리입니다. 물론 그 덕에 우리나라의 전자업계는 기사회생을 했고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1960년대 라디오 보급을 위해 시행해야 했던 정책은 70년대의 흑백 TV 보급을 거쳐 80년대의 컬러 TV 보급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컬러방송을 반기지 않았던 사람들
1980년 12월 1일 문공부장관 이광표가 KBS-TV 사옥에서 컬러TV 방송의 송출 스위치를 누르는 동작으로 대한민국 TV의 컬러시대가 열렸습니다. 컬러로 방영된 제1호 방송 프로그램은 무엇이었을까요? <'수출의 날' 기념식 중계방송>이었습니다. 방송을 준비하면서 방송국 임직원과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다름 아닌 행사에 참석하는 전두환 대통령의 의상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톤 앤 매너의 옷을 입어야 이른바 TV에 잘 나올지 도저히 계산이 안 됐습니다. 디자이너와 방송국 직원, 청와대비서관 등이 머리를 맞대로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컬러 TV 시대의 개막으로 가장 큰 고충을 겪은 이들은 연예인과 분장사들이었다고 합니다. 흑백 TV 때는 외모의 결점들을 감쪽같이 들키지 않고 잘 넘어왔는데 이제는 어떡하느냐며 당혹스러워했던 연예인들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MBC의 제작부에서는 안내문을 붙였을 정도였습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의 원색 의상을 피하라', '가로무늬 옷을 피하라', '진한 색깔의 립스틱을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 등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1980년대는 총천연색의 혼란 혹은 혼동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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