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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송은 어떻게 흘러왔나

영화의 재미는 그들이 좌우했다, 변사

by 빵주작가 2023. 4. 29.

서상호, 서상필, 김조성, 김덕경, 김영환. 1920, 30년대 최초로 대중스타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직업은 변사(辯士)였습니다. 영화가 상영될 때 현장에서 화면 속 대사와 상황을 실감 나게 얘기하는 직업입니다. 당시의 영화는 무성영화였습니다. 무성영화의 스타, 변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한반도 최초의 스타, 변사

참참참!’ 하면 생각나는 프로그램 <이홍렬 쇼>의 메인 MC 이홍렬은 참 재주가 많은 분입니다. 코미디 연기도 탁월했지만 변사 흉내를 잘 냈습니다. 1982년 신인 시절 <11>의 코너 청춘극장에서 변사로 신인상까지 탔습니다. 80년대 후반 방영했던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의 코너 필름은 돌아갑니다에서도 그는 변사 역할을 했는데요, 무성영화 배우 역할은 이경규가 했습니다. 또한 30년을 훌쩍 뛰어 2015년에는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서도 변사 역을 맡았습니다. 이홍렬에게 변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나 봅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 시절에 태어났다면, 분명히 뛰어난 변사로 스타가 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직업이지만, 변사는 이 땅에서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스타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한 배우일 텐데요, 대중의 시선을 먼저 받은 쪽은 변사들이었습니다. 이유는 짐작하실 겁니다. 당시의 영화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무성영화였고, 화질도 좋지 않아 화면 속의 배우가 각인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은 화면 옆에서 열정적으로 모노드라마 수준의 연기와 액션을 하는 변사를 보며 매료되었을 겁니다.

 

변사가 어떻게 영화를 요리하느냐에 따라 해당 영화가 재미가 배가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을 겁니다. 이런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극장 대표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관객을 최대한 오게 하기 위해 영화에 대한 홍보를 하는데요, 영화의 내용이 재미있다거나 스타 배우가 나온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우리 극장에는 이렇게 뛰어난 변사가 있다는 점을 최대한 부각했습니다. <여러분이시여, 기쁜 소식이 왔습니다>라는 책을 보면 당시 최고의 흥행사라고 불린 박승필이 19181221일자 <매일신보>에 실은 광고가 나옵니다. (중략) 활동사진에 대하여 본 관주는 항상 유감히 생각하는 바는 값 많고 내용 좋은 사진을 영사할 때에 변사의 설명이 불만족하여 일반 관람하시는 데 불만족과 불평의 성이 남을 때라 역시 사진의 가치도 없어지는 일이 있어서 본 관주의 재삼숙고로 활동계의 호평 있고 갈채받는,, 아니 구변으로는 제일류되는 서상호 군을 특히 초빙하여 변사주임으로 정하고 천연한 표정과 그럴듯한 익살 잘 부리는 변사와 희로애락을 기묘하게 자아내는 변사 합 오륙 인이 있어 매일 밤 무대 위에서 일거딜동에 대한 설명은 참으로 본 관주의 자랑뿐 아니요, 장차 보아 가시는 대로 평판이 있사오리다.

 

김제동이 말하면 군대 이야기도 재미있다

변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영화라도 재미가 있느냐, 재미없냐가 판가름 난다는 걸 생각하게 하는 개인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바로 직전, 이른바 김제동 국감사건이 있었습니다. 방송에서 김제동이 자신의 군 경험을 얘기하면서 했던 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장성의 부인들을 아줌마라고 불렀다고 영창에 갔다는 내용이었죠.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이 발언을 문제 삼아 국정감사에 부르겠다, 김제동은 갈 준비 하고 있으니 불러라, 하며 옥신각신 했었습니다. 당시 김제동이 그 얘기를 했을 때 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김제동의 톡투유> 녹화를 하고 있었고 주제는 남자였습니다. 남자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가 뭐가 있을까요, 군대 얘기입니다. 근데 군대 얘기는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날 출연한 패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군대 얘기를 했는데 하나 같이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특히 채사장이라는 베스트셀러 저자는 심하게 재미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무려 20여 분이나 열변을 토했습니다. 김제동은 아마 그런 상황이 참을 수 없었나 봅니다. 채사장의 군대 얘기가 끝나자마자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여자들이 군대 얘기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아십니까? 군대 얘기는 재미가 없어서요? 아닙니다. 재미없게 얘기해서 그런 겁니다. , 제가 군대 얘기 잠깐만 해드릴게요!” 하고서 얘기하다가 나온 게 문제의 발언이었습니다. 김제동이 한 군대 얘기는 어땠을까요. 그야말로 빵빵 터졌습니다. 여성 청중들도 까르르 까르르 장난 아니었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어떻게 전달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이고, 일제강점기 무성영화 무대에서는 변사가 그 중심에 있었던 겁니다.

 

무성영화 스타 변사의 화려했던 전성기

은막의 우상은 배우지만 극장의 우상은 변사라는 말도 있었다고 하니 변사들의 경쟁은 치열했고 각기 자신만의 특기를 개발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소설 <변사기담>을 보면 이제 갓 변사가 된 주인공 기담은 쟁쟁한 선배 변사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맛깔스러운 비유 표현을 입에 붙게 하기, 액션 활극 영화의 경우 더욱 실감나는 진행을 위해 화면 속 배우가 주먹을 내지르면 기합과 함께 주먹을 내지르고 동시에 발을 차곤 해서 관객들에게 택견 변사라는 별칭이 붙기도 합니다. 변사가 받는 개런티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남자 주인공이 보통 영화 한 편에 50원을 받았는데요, 단성사나 조선극장의 스타급 변사는 월급 150원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마지막 영화 상영이 끝날 때면 인근 명월관이나 국일관의 기생들이 보낸 인력거가 줄지어 있었다는 말도 과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시 거리를 걷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정도로 인기 있는 변사는 서상호, 서상필, 김조성, 김덕경 등이었습니다. 특히 서상호, 서상필 형제는 영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 할리우드 영화도 완벽하게 재연했다고 합니다.

 

<소설 변사기담>에서 변사 기담은 무성영화에 말을 입히는 일은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키는, 화룡점정과 같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영상 기술의 발달은 최초의 스타 변사들이 해오던 작업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듭니다. 1935년경부터 유성영화가 나오면서 무성영화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잊혀갔습니다.. 변사는 암울한 식민지 조선의 민중에게 잠시나마 모든 걸 잊게 하고 웃음을 주고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했던 만능 엔터테이너였습니다. 온몸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진짜배기 예능인이었습니다. 소리 없는 활동사진이라는 평면적인 콘텐츠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이들의 끼는 뒤를 이어 오는 재주꾼들에게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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